소득 수준이나, 삶의 외적인 환경에 따라서가 아니라, 전 연령에서 우울증 발병이 보편화 되고 있다. 부자들이 우울증에 많이 걸리는 이유로 먼저 상대적 박탈감을 꼽는다. 돈 많고 출세한 사람일수록 쉽게 우울증에 노출되고 또 성실하고 능력을 인정받는 직장인이 실직했을 때 우울증에 잘 걸린다는 것이다. 노숙자보다 돈이 많았던 사람이 갑자기 파산했을 때 급성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현대인들의 최대 과제는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불행한 심리상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첨단 과학문명 사회에 속하였지만, 극한 경쟁시대에 생존해야 하는 한국인들은 깊은 우울증과 번민으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버리지도 않으신다.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고 피조물된 사람의 본분을 회복해야만 한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호 11:8-10)

지금이나 옛날에나 모든 인간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하지 말고,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존재와 통치와 임재가 전혀 없이 살아가는 자들은 장래 소망이 없다. 그저 막연하게 각종 종교행위들에 끌려다니면서 이것저것 기웃거린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막연한 초월주의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자신의 미래도 모르는 점쟁이에게 우리의 미래를 의존하는 것과 같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기도 하고, 거창한 종교적 예식이나 주문을 외우기도 하지만, 모두 다 허공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들이다.

일반 종교를 살펴보면, 그들이 섬기는 대상을 만족시켜 주는 행동을 요구한다. 더 많이 맡기는 사람에게는 더 큰 것이 주어진다는 구조이다. 물론, 사람들은 종교행위에서조차 맹목적인 욕심에 사로잡히기 일 수 있다. 허망한 종교에 소속하여 무엇인가를 얻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허무한 마음을 채우지 못한 채 사로잡히고 만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평안과 평화가 없다. 물론, 하나님을 숭배한다고 하면서도 잘못 섬겨온 거짓 신자들, 가짜 기독교인에게도 결코 순수한 평화란 없다. 거짓 종교와 가짜 기독교에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과 신앙이 없으므로, 영적인 혜택과 평화를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고 하는 교회들마저도 참된 진리에 입각해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하기 보다는 신자들과 기독교 교회 지도자들마다 헛된 야심에 가득차서 다툼과 분열의 연속이다.

먼저 현대인들의 적나라한 실존을 들여다보자. 우리는 과연 지금 어떤 모습인가? 현대인들의 실존과 자화상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없다.

우울한 한국인들의 자화상은 자살율의 증가와 급속한 우울증 환자의 확산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대인들은 전자 기술과 공학이 발전하여 지금까지 전혀 누리지 못한 가장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현실과는 달리 내면의 세계는 황폐화되고 말았다. 마치 곳곳에 쌓이는 쓰레기와 오염물질의 악취와 부패처럼, 인격과 가치관이 파괴되고 말았다. 육체적으로는 암이 가장 무서운 질병이지만, 영적으로 인간은 더 심각한 죄악과 부패라는 만성적인 독성에 물들어있다. 목회자로 유명한 분들부터 시작해서 정치인, 군인, 교사, 의사, 교수 등 남성들의 성범죄와 성추행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뉴스의 흥미로운 소재이다. 일시적 쾌락은 사람을 황폐화시키는 가장 흔한 유혹이요, 한번 넘어지게 되면 그 타락의 길에서 헤어 나올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멸망의 길이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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