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호 관 목사
8월 18일이 무슨 날인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쌀의 날이다. 쌀의 소중함을 알리고 쌀 소비량을 조금이라도 늘려볼까 해서 쌀의 날을 지정했을 것이다. 우리 선조가 쌀을 먹기 전에는 아마도 잡곡과 맥류를 주식으로 하였을 것이다. 보리와 밀, 그리고 잡곡류(피·기장·조·수수 등)는 각기 중동·인도·아프리카 등 지역에서부터 재배되기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한다. 지상에서 벼농사가 처음 이루어진 땅을 인도 동북부 지역인 아삼(Assam)에서 중국 운남(雲南)지방에 걸친 넓고 긴 지역이라고 보고 있다. 연대는 약 6,000∼7,000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쌀은 인류역사와 거의 함께 한 셈이다. 이 지대에서 방사형으로 아시아 각 지역에 전파되어 갔는데 그 한 경로는 양쯔강 하류로 뻗어나가다가 황하 유역으로 퍼져나갔으며 우리나라까지 전래된 것으로 본다. 경기도 여주와 평양지역에서 출토된 쌀의 유물들을 연구한 결과 얻어진 결론에 의하면 이 땅에 볍씨가 들어 온 때는 약 3,000여 년 전으로 측정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대동소이한 견해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북쪽지방으로 들어온 벼농사는 남부지방으로 진출하면서 기후와 지세, 그리고 수자원의 편리 등 적절한 자연여건으로 인하여 영, 호남지방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삼국사기에 백제의 쌀농사에 관한 기록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에 벼농사가 상당히 발전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특히 통일신라시대에는 쌀이 주곡 중에서 1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주식의 기반을 굳힌 쌀은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더욱 일반화되어 쌀 증산에 모든 힘을 기울여 수리강화, 재배법 개량, 경지면적 확대, 쌀 창고 증설 등 쌀 증산에 박차를 가하여 한 때는 쌀을 화폐로까지 사용할 정도였다. 조선 왕조는 치산치수에 역점을 두고 다각적인 권농정책과 쌀 증산운동을 전개하여 그 생산량을 꾸준히 증가시킴으로써 수백 년을 이어오는 동안 쌀이 우리민족의 밥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에 귀가 따갑도록 들으며 살았던 말이 춘궁기, 보릿고개라는 말이었다. 지금은 이런 말의 의미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사전을 찾아봐야할 지경이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거리에서 어른을 만나면 문안 인사말이“진지 잡수셨어요?”였으며, 정신없이 뛰노는 어린아이들에게는“뛰지 마라 배 꺼질라!”고 하였으니 얼마나 고단한 세월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요즈음에 쌀이 애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복잡한 요인들을 인정하더라도 쌀이 받는 푸대접의 정도는 많이 심하다는 생각이다. 지난 10월27일 농림축산식품부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예상되는 국산 쌀 재고량이 약 85만 톤이나 된다고 한다. 2014년분 54만 톤(63.5%), 2013년분 21만 톤(24.7%), 2012년분 10만 톤(11.7%) 가량의 합산이다. 한 사람이 년 간 소비하는 쌀의 량이 1970년에 374Kg 이었는데 금년에는 65Kg 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해마다 풍년이고, 먹지는 않고 그러니 재고가 쌓이는 것은 당연하다. 남는 쌀을 관리하는 비용이 10만 톤당 316억 원이라니 85만 톤의 쌀을 관리하는 비용이 2,686억 원이라는 계산이다. 국정감사에서 어떤 의원이 남은 쌀을 바다에 버리면 어떻겠느냐? 고 물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 정도면 쌀은 애물단지가 아닌가?

지금도 지구촌에는 하루 세끼 못 먹는 사람, 굶어 죽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70억 인구 중에 9억이 빈 그릇만 바라보고 있으며, 이 숫자는 9명 가운데 1명이 굶고 있다는 계산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5세 이하의 영유아들 절반이 기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반 정도의 아이들이 매초마다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데 이렇게 많은 쌀을 쌓아두고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납득할 수가 없다. 식생활 개선은 물론이고, 다각적인 소비전략을 펼쳐야 한다. 5.24조치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어떤 지혜를 짜내야 한다. 중국에 쌀과 삼계탕 수출을 서둘 것이 아니라 굶주리고 있는 북한의 우리 동포들을 먹여 살릴 방도를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가장 손쉬운, 그리고 효율적인 용처가 있음에도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자 보물인 쌀을 애물단지로 천대할 것이 아니라 하얀 쌀밥에 고기 국 한 그릇을 애타게 기다리는 북녘의 우리 동포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장마당을 떠도는 꽃 제비들을 위하여 쌀 창고를 활짝 열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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